서문
글을 쓴다며 산 세월이 내 살아온 삶의 절반을 넘긴 지 이미 오래다.
지금 돌이켜 보니 꺾인 60년 그 긴 세월이 한순간이었음을 새삼 다져 깨닫는다.
지난 30년 나는 글에 갇혀 살았다. 낡은 책상에 앉아 떠오르는 대로 쓰고, 내뱉었다. 궁둥이가 짓무르는 줄도 모르고 앉아 글만 써댔으니, 내가 미련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세상이 감동할 만한 글을 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글을 써댄 것은 세상이 감동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감동하기 위함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궁둥이가 짓무른 데도 온종일 앉아 글을 써대지 못했을 것이다.
이 탓에 고생한 것은 아내와 자식들이다. 10년 끝에 내 능력을 살펴 절필하고, 생업에 매진했다면 작고하시기 전 부모님 모시고, 온 가족이 건사한 호텔에 예약해 늦은 저녁 식사라도 한번 함께 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조차 못했으니, 아내 보기 민망하고 부모님께 불효가 막급하다 하겠다. 그 사이 부모님 두 분 모두 작고하셨다.
그러나 국립중앙도서관 서가에 내가 쓴 책이 실리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누군가 그 책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긴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어차피 내 운명에 부귀와 공명이 없음을 진작 알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그럴 바엔 마음 졸이는 일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 낼 것을.
내 진작 그것을 깨닫지 못해 허황한 마음에 올라 고단한 삶을 고대이었으니, 경상도 말로 나는 ‘덩신’이거나 ‘터구(바보, 천치라는 의미)’임이 틀림없다.
한치만 살아봐도 다 알 수 있는 일을 나만 알지 못하고, 지금껏 글을 쓴다고 허우적대고 있으니 누가 날 귀히 여기겠나. 어디 귀함은 고사하고 내 어리석음을 진작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글에 갇혔으니 내가, ‘터구’임이 분명하다.
2024.6. 정상
목차
- 안양천변 풍경
- 한탄강 소회
- 글에 갇혔다.
- 소설가 ‘박경리 선생님’ 우리 곁에 좀 더 오래 머무시길
- 금아 피천득 선생님을 보내며
- 어머님의 노래
- 엄니의 손맛 – 감칠맛의 배추겉절이
- 저 풍경
- 계절을 잊은 아내의 반 부츠
- 쉰둘 소녀, 연(緣)!
- 어울림
- 첫사랑
- 새우젓 장수
- 동수의 봄날, 새싹 기술자
- 소년의 함성, “와! 엄마! 눈 왔다!”
- 동수의 남풍
- 소와 아이
- 회한(悔恨), 아버지 떠나신 그날을 어이 잊으랴.
유년의 기억들과 그 아름다운 날들을 담백한 언어로 풀어낸 글들을 모았다. 독자들도 글제 및 내용에 크게 공감하리라 여겨진다. 일부 글은 인테넷 신문 등에 게재했던 글이라, 낮이 익을 지도 모르겠다.
- 그 애의 이름은 연(緣)이다. 아직도 수줍어 붉은 마음을 간직한 그녀는 분명 쉰둘의 소녀다. 애초 내가 상상했던 대로 유년기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 모습은 놀라우리 만치 변함이 없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목소리와 말투까지, 짓는 몸짓, 표정까지도 그렇다. 웃을 때 마다 얼굴이 오른쪽으로 잦히면서 눈에서 입가로 연잇는 미소의 선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쉰둘 소녀, 연(緣)' 중 에서
- 동수가 잠에서 깬 것을 안 엄마가 동수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그리고는 동수를 향해 나지막이 말합니다./ "동수! 잘 잤어. 봄 날 햇살이 동수처럼 곱구나./ 동수 역시 엄마의 말을 다정히 받습니다./ "그래요, 엄마, 정말 제가 저 붉은 아침 햇살처럼 고와요. 엄마의 아들이어서 그런 것이지요."- '동수의 봄날, 새싹 기술자' 중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이해', '뜨거운 감자', '한국의 길', 청소년을 위한 '단 한명의 청소년을 위한 담론', 시, 에세이집에 '행복을 주는 사람', , '정상의 시론 @ 36편의 시', 소설, 회화동, 봉변, 봄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