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새로운 어른’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2040년, 대한민국의 어느 평범한 도시. 젊은이들의 활기로 북적여야 할 거리는 한산하고, 문을 닫은 초등학교 건물은 을씨년스럽다. 간혹 보이는 젊은 부부의 어깨는 자신들이 부양해야 할 네 명, 혹은 그 이상의 노부모에 대한 무게로 휘어져 있다. 부족한 생산가능인구 탓에 경제 활력은 떨어지고, 연금과 건강보험 재정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다. 이것은 비관적인 소설의 한 장면이 아니라,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우리가 맞닥뜨릴 가장 확률 높은 미래의 자화상이다.
정책 담당자로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현안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면, 결국 하나의 거대한 지각 변동과 만나게 된다. 바로 ‘인구절벽’이다. 역사상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과 고령화의 쓰나미는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안보, 문화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의 대응은 주로 ‘부족함’을 메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부족한 출생아를 늘리기 위한 출산장려책,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한 외국인 인력 수급, 부족한 연금 재원을 둘러싼 세대 간의 위태로운 논쟁. 이 모든 노력은 중요하지만, 마치 거대한 댐의 갈라진 틈을 손가락으로 막으려는 듯한 미봉책에 가깝다.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는, 우리는 서서히 가라앉는 배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은 바로 그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가 ‘위기’라고만 불렀던 인구 구조 변화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곳에 숨겨진 거대한 잠재력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비용’이자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거대한 인구 집단, 바로 65세 이상의 시니어 세대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재점화하는 것, 이것이 인구절벽 시대를 건너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생각을 바꿔보자. 지금의 시니어 세대는 과거의 ‘노인’과는 전혀 다른 존재다. 그들은 단군 이래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며, 산업화와 민주화, 정보화 혁명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수십 년간 각자의 분야에서 쌓아 올린 전문성과 노하우, 실패와 성공을 통해 체득한 통찰력,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에 뻗어 있는 인적 네트워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사회적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귀중한 자산을 ‘은퇴’라는 이름 아래 사회 시스템 밖으로 너무 쉽게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지금 금광을 눈앞에 두고도 그저 평범한 돌산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 방치된 금광, 즉 시니어 세대가 가진 무형의 자산을 ‘경험 자본(Experience Capital)’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경험 자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인공지능이 데이터 분석과 정보 처리를 대신할 수는 있어도,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직관적인 판단을 내리며, 다음 세대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역할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이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축적된 ‘경험’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문제는 이 막대한 경험 자본이 현재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는 점이다. ‘꼰대’, ‘옛날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낙인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시니어들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며 위축되고 있다. 사회는 그들의 지혜를 구하기보다 그들의 복지를 걱정하는 데 급급하다. 이러한 인식의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어떠한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어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존경받던 과거의 권위적인 어른도, 단순히 부양받는 수동적인 노인도 아닌,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주체적인 존재. 즉, 끊임없이 배우고(學習), 가진 것을 나누며(貢獻), 다음 세대와 소통하고(疏通), 변화를 포용하는(包容) 새로운 시대의 어른 상을 정립해야 한다.
이 책은 ‘새로운 어른’의 탄생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1부에서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의 실체와 ‘노인’이라는 낡은 프레임의 한계를 데이터와 현실을 통해 냉철하게 진단할 것이다. 2부에서는 ‘경험 자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현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의 역량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그려본다. 3부에서는 시니어 개개인이 어떻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는지, 재사회화 교육과 ‘회갑’의 재해석이라는 개인적 솔루션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이 모든 변화를 뒷받침할 사회 시스템, 즉 낡은 경로당을 세대 통합의 허브 ‘지니 하우스’로 탈바꿈시키고, 시니어들의 경험 자본을 국가적 위기 해결에 활용하는 ‘시니어 사단’이라는 혁신적인 사회적 솔루션을 상세히 다룰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이상론이 아니다. 정책 담당자들이 책상 위에서 당장 실행 계획을 구상할 수 있도록, 국내외 성공 사례와 데이터, 단계별 추진 전략, 그리고 예상되는 난관에 대한 해법까지 담아낸 치밀한 정책 제안서다.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지금 거친 풍랑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는 바로 정책 결정권을 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부디 이 책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등대와 나침반이 되기를 소망한다. 100세 시대, 우리 사회에 잠들어 있는 거인을 깨워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는 위대한 여정에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CONTENTS
프롤로그: 왜 우리는 '새로운 어른'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4
1부: 위기 그리고 기회 (현실 진단) 10
1장: 4차 산업혁명과 저출산 고령화, 거대한 파도 11
2장: '노인'과 '꼰대'라는 낡은 이름표 (문제 제기) 25
2부: 새로운 어른의 탄생 (비전 제시) 37
3장: '노인'을 넘어 '어른'으로 (새로운 개념 정립) 38
4장: 현시대가 요구하는 어른의 4가지 역량 (소통/수용/융합/기여) 53
3부: 어른으로 거듭나는 길 (개인적 솔루션) 68
5장: 나를 바꾸는 10가지 재사회화 훈련 (교육 프로그램 심화) 69
6장: 60세, 두 번째 인생의 출정식 (회갑 재해석) 83
4부: 새로운 어른을 위한 사회 (사회적 솔루션) 95
7장: 세대 통합의 허브, '지니 하우스' (경로당 개선안) 96
8장: 대한민국을 지키는 지혜, '시니어 사단' (사회 기여 모델) 105
참고 문헌 114
에필로그: 경험이라는 가장 위대한 자산, 미래를 향한 제언 118
나기권, 정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