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작가가 자신의 도자 작업과 함께 집필한 소설 은 제법 잔혹한 리얼리즘 픽션이다. 작가는 글의 서두에서 ‘남’이라는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빼어나게 아름다운 남자”를 등장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여기서 기원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 ‘남’은 공동체의 추악함을 비추는 장치이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허용된’ 폭력의 대상물, 즉 희생양(Scapegoat)으로서의 인물이다. 사1람들은 그의 초월적 아름다움을 흠모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아름다움에 자신들의 추한 욕망과 부끄러운 비밀을 투사하고, 끝내 배제한다. 그러나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남’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담은, 외전의 형식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한 시골 마을에서 부조리(不條理, absurdity)한 고통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외전의 인물들—김양, 조태호, 덕임 등—은, 공동체 외부에서부터 등장해 희생양이 될 수 있었던 ‘남’과는 달리, 내부에서 ‘밀려난 자’들이다. 그들은 모두 기이한 부조리극 속에서 자신만의 치열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 김양(점순)의 삶은 ‘아름다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덕임 역시 '애꾸눈의 벙어리 여자'라는 태생적 조건이 그 운명을 결정짓는다. 조태호는 내재화하고 대물림된 폭력의 희생자로서, 자기파괴적인 복수로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스스로를 추방한다. 이처럼 이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불가항력적인 힘(삶)이다. 그들은 주체에서 분리되고 내버려진, 즉 오물이나 시체처럼 불결하고 혐오스러운 존재(abject)이자 불합리한 폭력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자들은 그들이 부조리한 삶을 겪으며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그것을 견뎌내고자 하는 강한 삶의 의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2이를테면, 말을 못 하는 벙어리여인 덕임은 가장 극적인 '버려진 자'이다. 그는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저 맞고 부서지는 객체로 존재하지만, 침묵 속에서 딸 희자를 빼돌리고, 결국에는 남편의 얼굴을 돌로 짓이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억압하던 질서를 전복시킨다. 작가는 덕임이 남편의 3얼굴을 난도질당한 생선 토막처럼 여기며 신명을 느끼는, 혐오스러운 것이 숭고한 해방감으로 전이되는(abjection) 그 기괴한 순간을 비춤으로써, 억압되고 버려졌던 비체(卑體, abject)가 상징 질서를 파괴하며 공포스럽게 '귀환'하는 순간을 그려낸다.
01남
아름다움의 탄생 2p
경외심의 이면 6p
망각의 겨울 11p
봄 14p
02 김양 외전 21p
조태호 31p
03 장수 집 외전 40p
희 자 44p
04 청암 댁 외전 55p
덕임과 경자 61p
김양과 덕임 66p
시처럼 매만진 문장 위에, 잊힌 자들의 비명이 그려진다. 여성의 상처와 마을의 침묵, 욕망과 증오가 층층이 겹쳐진 이 서사는 회화적인 밀도와 정교한 구조를 지닌, 감각적으로 완성된 한 편의 영화 같다.
감독으로서, 나는 이 첫 소설이 가진 시각적 서사력과 감정의 진폭에 깊이 감탄했다.
-이인의 영화감독
사진을 보듯 선명하게 그려진 장면들은 물속에 잠긴 듯 질척한 몰입으로 독자를 이끈다. 서서히 드러나는 이야기들은 불현듯 진실을 수면위로 건져낸다. 참혹하고 아름답다.
-우민아트센터 큐레이터 최정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 온 폭력과 억압, 혐오와 배제의 오랜 역사, 그리고 결국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비극속에서 김윤아 작가는 삶과 현실에 대한 애정을 작품에 직접 언급하거나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 <<남>> 통해 우리 현실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인간관계, 공동체, 연대에 관해 덤덤하게 질문를 던진다.
-미술비평 C
표면은 고요하지만 서사의 결은 날카롭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들 사이사이 외면, 욕망, 증오와 같은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이 스며들어 묘한 긴장감을 조율해나간다. 이러한 밀도 높은 서사의 구성이 나의 내면을 더 깊숙이 흔들고 작품세계 속으로 완벽히 잠수하게 만들었다. 장면 구성과 대사의 결이 살아 있어 희곡 대본으로 옮겨도 그 긴장과 감정이 고스란히 살아날 것같다. 나와 동명인 극 중 ‘덕임’을 따라 읽으며, 현실을 살아가는 ‘덕임’으로서 나 자신의 삶과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녀의 침묵과 단단한 시선은, 나의 태도와 마음에도 조용한 질문을 남겼다.
_ 덕임 (청주대 건축학과 대학원생)
김윤아(시각예술가) 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화과를 수료했다. 작가는 회화 작업과 설치 작업을 기반으로,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개인이 가진 사적 기억이나 감정이 거세, 조직화, 수치화되는 과정에서 유실되는 것들의 가치 문제를 환기시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무색인종》 우민아트센터, 《완벽한식탁》 청주시립미술관 창작센터, 《꽃이지니몰라보겠다》 상업화랑, 《Room401》 수류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