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취 제로』는 어떤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 소설이다.
대신, 사건이 되지 못한 순간들—지연된 반응, 어긋난 기억, 끝내 봉합되지 않은 말들—에 오래 머문다.
이 책에서 세계는 언제나 약간 늦게 도착한다.
소리는 바로 닿지 않고, 감각은 0.33초쯤 어긋나며, 기록은 늘 경험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 미세한 지연 속에서 인물들은 결론을 내리기보다 멈추고, 판단하기보다 듣는다. 듣는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닫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도시와 기술, 센서와 로그, 경고등과 수치는 배경이 아니라 조건으로 존재한다. 그것들은 안전을 약속하는 동시에 기억을 압박하고, 말해지지 못한 것들을 더 무겁게 만든다. 『청취 제로』는 이 압박 속에서 의미를 서둘러 만들지 않는 선택이 어떤 윤리가 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이 소설에는 프롤로그도, 해설도, 결말의 요약도 없다.
각 장은 완결되지 않은 채 서로를 건드리며 반복되고, 독자는 해결자가 아니라 증인의 자리에 머문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보다, 어디에서 멈추었는지를 느끼게 하는 읽기다.
『청취 제로』는 구원을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 응답되지 않은 목소리 앞에서 너무 빨리 페이지를 넘기지 않도록 독자를 붙잡는다. 끝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시간, 닫히지 않은 틈에서 이어지는 청취—그 조용한 긴장이 이 책의 전부다.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1부 — 층위 아래의 시작
1. 잠든 층들의 기록
2. 첫 번째 머리카락 같은 금
3. 숨 쉬는 먼지의 도시
4. 새벽의 문턱
5. 사이렌의 메아리
6. 방법들의 불협화음
7. 깊은 읽기
8. 먼지의 기둥
9. 첫 합의
10. 배신의 초록
11. 마이크 없는 말
12. 승강기 그림자
2부 — 균열선 위를 걷다
1. 헤어라인 컨트롤
2. 노란색이 생각하는 시간
3. 에코의 충돌
4. 균열의 철야
5. 진원의 자리
6. 거짓 승리들
3부 - 먼지가 예고한 새벽
1. 먼지의 신탁
2. 먼지의 상승
3. 합류
4. 불의 호(弧)
5. 숨의 문턱
6. 첫 번째 대답
7. 귀환
4부 — 다리가 무너진 자리에서 숨을 고르다
1. 공명의 질문
2. 겹침의 놀이
3. 거울의 균열
4. 도시가 되돌려 듣는 밤
5. 봉인과 비봉인
작가 노트
작가 소개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
하지만 불친절하려고 애쓴 책도 아니다. 다만, 너무 빨리 대답해 주는 일을 거절한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것이 즉시 설명되고, 요약되고, 정리된다. 이 소설은 그 흐름에서 한 발 비켜 서 있다.
『청취 제로』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말해 주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어떤 순간에서 멈췄는지를 보여 준다. 멈췄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을지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우리가 아직 넘기지 않은 페이지 앞에 서 있는 상태를 오래 붙잡는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결정을 미루고, 판단을 유예하며, 의미를 너무 빨리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그것은 우유부단함이라기보다 일종의 용기에 가깝다.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말하지 않는 용기, 아직 모른다고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듣겠다고 말하는 용기다.
도시와 기술, 데이터와 경보는 이 책에서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질문을 더 느리게 만든다. 세계는 늘 약간 늦게 반응하고, 감각은 언제나 어긋난다. 그 작은 지연 속에서 우리는 보통 서둘러 결론을 만든다. 이 책은 그 습관을 조심스럽게 멈춰 세운다.
『청취 제로』는 위로를 약속하지 않는다.
회복을 선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실패만은 아닐 수 있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확신보다 기다림이 먼저 오는 순간, 설명보다 침묵이 더 정직해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남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아마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이야기였지?”
그 질문은 이 책의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이 끝까지 지키려 한 자리다. 의미를 닫지 않고, 시간을 봉합하지 않고, 독자를 해석자가 아니라 함께 서 있는 사람으로 남겨 두는 자리.
『청취 제로』는 읽고 나서 이해되는 책이 아니다.
읽는 동안, 잠깐 멈추게 되는 책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책은 바로 그런 종류의 책일지도 모른다.
백동인은 오래 글을 써 왔다.
처음부터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신학을 공부했고, 교회를 섬겼고, 강단과 강의실에서 말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말이 너무 빨리 결론으로 가버릴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문장 앞에서 자주 멈추게 되었다.
그는 세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세계가 아직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순간에 관심이 많다. 기록, 기억, 도시, 기술 같은 것들이 사람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동시에 얼마나 쉽게 숨을 막을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사건보다 간격이 많고, 대답보다 기다림이 많다.
이 책에서 그는 무엇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너무 빨리 의미를 만들어 버리기 전에 잠깐 서 보자고 말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덜 확신에 차고,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특히, 어떻게 잘 듣는지에 대해서.
저서 소개: https://url.kr/dnjle8
저자 소개: https://wipfandstock.com/author/dong-in-ba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