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중(執中)하는 욕망(欲望),
집착(執着)하는 욕심(慾心)
2026년(年) 3월(月) 1일(日)은, 제(第)107주년(週年) 삼일절(三一節)이다. 삼일절(三一節)의 의미(意味)는, 일제강점(日帝强占)에 대(對)한,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자주독립선언(自主獨立宣言)인데, 작금(昨今)에 발발(勃發)한 ‘미국(美國)과 이란(Iran)의 전쟁(戰爭)’처럼, 전세계적(全世界的)으로 불확실(不確實)하며 전반적(全般的)인,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는 형국(形局)이니,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자주독립(自主獨立)을 유지존속(維持存續)하는 일이야말로, 국가대사(國家大事) 중(中)의 국가대사(國家大事)라고 할 것이다.
당시(當時) 삼일절(三一節)은, 일제강점(日帝强占)의 상황(狀況)인 탓에, 부득이(不得已) 평화적(平和的)인 만세운동(萬歲運動)으로서 진행(進行)되었는데, 이러한 평화(平和)는 항상(恒常), 전쟁(戰爭)과 동시적(同時的)으로 작동(作動)하는, 개념(槪念)임을 유념(留念)해야 한다.
흔히 선악이분법(善惡二分法)에 의(依)하여, 평화(平和)는 선(善)이고, 전쟁(戰爭)은 악(惡)이라는 식(式)으로 규정(規定)하는데, 국제정치적(國際政治的)인 측면(側面)에서 이러한 논리(論理)는, 심각(深刻)한 오류(誤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인류역사(人類歷史)를 참작(參酌)할 때, ‘평화(平和)는 목적(目的)이고, 전쟁(戰爭)은 수단(手段)이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對)하여, 일부(一部) 순수주의자(純粹主義者)들이나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들은, 전쟁(戰爭) 자체(自體)가 비인도적(非人道的)이며 폭력적(暴力的)이므로, 결(決)코 평화(平和)의 수단(手段)일 수 없다고 주장(主張)한다.
언뜻 보면, 이 말이 일리(一理) 있는 듯하지만, 이는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실상(實狀)이, 전(全)혀 반영(反映)되지 않은 논리(論理)라고 할 것인데, 동서고금(東西古今)에서, 전쟁(戰爭)이 온당(穩當)한 것일 수는 없지만, 전쟁(戰爭)이 부재(不在)한 채로, 유지(維持)된 평화(平和)의 사례(事例)는, 거의 전무(全無)하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筆者)가 항상(恒常), 현실주의(現實主義)를 강조(强調)하는 것이며, 이상주의(理想主義) 자체(自體)의 무용론(無用論)을 주장(主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입바른 소리로서, 한갓 미사여구(美辭麗句)에 불과(不過)한 이상주의(理想主義)를 주장(主張)하는 경우(境遇), 필자(筆者)로서는 적극(積極) 비판(批判)하게 된다.
다음은, 1997년(年)에 발표(發表)되었으며, ‘지누션’과 ‘엄정화’가 노래하여 널리 알려진, ‘말해줘’라는 노래의 가사전문(歌詞全文)이다. 노래의 가사(歌詞)에 표현(表現)된 바처럼, 인간존재(人間存在)가 온갖 인간관계(人間關係)에 있어, 대체(大體)로 상대방(相對方)의 진실(眞實)된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실(實)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할 것이다.
특(特)히 남녀간(男女間)의 사랑에 있어, 서로를 사랑하고자 하는 과정(過程)에 있다면, 그야말로 실시간(實時間)으로, 어떻게든 상대방(相對方)의 사랑을, 확인(確認)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말해줘’의 가사(歌詞)처럼, 상대방(相對方)의 진솔(眞率)한 발언(發言)을 요구(要求)하지만, 과연(果然) 인간존재(人間存在)의 발언(發言)에 의(依)하여, 진실(眞實) 그 자체(自體)가 표명(表明)될 수 있는가. 때문에 이는, 대표적(代表的)인 철학적난제(哲學的難題)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제아무리 자기(自己)의 진심(眞心)이라면서 발언(發言)한다고 해도, 그러한 발언(發言)이, 참으로 진실(眞實)일 것이라는 여부(與否)를, 확인(確認)할 수 있는 방법(方法)은, 혹여(或如) ‘거짓말탐지기(探知機)’쯤을 활용(活用)한다고 해도, 실상(實狀) 현재(現在)에 이르도록, 거의 부재(不在)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例)컨대 현대적(現代的)인 심리학(心理學) 정신의학(精神醫學) 뇌과학(腦科學)... 등(等)에 의(依)하더라도, 인간존재(人間存在)의 정신(精神)에 의(依)하여, 어떤 진실(眞實)이 발언(發言)된다고 한들, 그것이 정작 인간존재(人間存在)의, 오롯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것인지의 여부(與否)마저도, 여전(如前)히 불분명(不分明)한 탓이다.
그래서 발언(發言)이 아니라, 행동(行動)에 비중(比重)을 두기도 하지만, 행동(行動)의 상황(狀況)도, 발언(發言)의 경우(境遇)와 별(別)다르지 않다. 과연(果然) 어떠한 행동(行動)이, 인간존재(人間存在) 스스로의 오롯한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진실(眞實)된 행동(行動)인지의 여부(與否)를 확인(確認)하기는, 여전(如前)히 용이(容易)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萬若) 필자(筆者)의 말이 ‘긴가민가’ 하다면, 잠시(暫時) 그대 스스로, 자기(自己)의 마음을 한 번(番) 살펴보라. 과연(果然) 그대는, 그대 스스로의 마음을, 진실(眞實) 그 자체(自體)로서, 직감(直感)하여 인지(認知)할 수 있는가. 그러니 흡사(恰似)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여하(如何)튼, 실(實)로 그러한 인간존재(人間存在)의 언행(言行)이니, 어떻든지 자아(自我)나 타자(他者)에게 있어, 신뢰(信賴)를 정초(定礎)하기 위(爲)해, 각고(刻苦)의 노력(努力)을 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勿論) 불교철학(佛敎哲學)에서 거론(擧論)하는, 굳이 발언(發言)이나 행동(行動)이라는, 과정(過程)이나 절차(節次)도 불요(不要)하며, 그야말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傳達)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나 심심상인(心心相印) 정도(程度)의 경지(境地)에 이른다면, 어쩌면 ‘말해줘’의 난제(難題)가, 해결(解決)될는지 모르겠다. 혹여(或如) 그대의 발언(發言)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程度) 진실(眞實)이며 사실(事實)인가.
-하략-
▣ 목차
행복철학 행복인문학
제7권
1. 집중(執中)하는 욕망(欲望),
집착(執着)하는 욕심(慾心)
2. 전쟁(戰爭)의 시대(時代),
평화(平和)의 시대(時代)
3. 확증편향(確證偏向, confirmation bias),
목적의지(目的意志, purposeful will)
4. 판도라(Pandora)의 상자(箱子),
인공지능(人工知能)의 상자(箱子)
5. 구자본주의(舊資本主義)의 몰락(沒落),
신제국주의(新帝國主義)의 도래(到來)
6. 전쟁(戰爭)하는 전쟁기계(戰爭機械),
생성(生成)하는 전쟁기계(戰爭機械)
7. 모방(模倣)하는 현대전쟁(現代戰爭),
가상(假想)하는 미래전쟁(未來戰爭)
8. 에너지전쟁(energy戰爭),
전략적비결정성(戰略的非決定性, Strategic Indeterminacy)
지은이 탁양현
≪인문학 에세이≫
≪삶이라는 여행≫
≪노자 정치철학≫
≪장자 예술철학≫
≪주역 인간철학≫
≪니체 실존철학≫